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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학위 기간에 지쳐있는 한 대학원생에게

 오랜 학위 기간 지쳐있는 한 대학원생에게


이 글은 H 석박사 커뮤니티에서 오랜 학위 기간 성과 없이 지쳐있던 한 학생의 한탄 글을 보고, 제가 답변을 했던 것을 조금 수정한 글입니다.


13학기 걸려 박사 학위를 받았었기에 남 일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에 석사 4학기 더하면 17학기?!)

그 시절 저 역시 그냥 때려치우고 그동안의 노력은 0으로 만들어버려야 하는가 고민 많았던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선 연구 외 업무는 후배들에게 일정 부분 넘겨주고 타 업무를 줄여보세요. 


후배들이 분담해주는 일을 검토만 해주고 핵심적인 것만 잡아줘도 타 업무 시간이 상당히 줄어들 겁니다. 모든 걸 본인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떻게 박사 학위를 받을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계획을 세워보세요.


예를 들면 학위 주제가 대강 있다면, msword든 tex이든 실제 학교의 학위논문 서식 파일에 목차부터 작성하고 본문에는 목차에 따라 작성할 수 있는 것부터 대강 채워 넣으세요. 그러면서 앞으로 작성되어야 할 것, 추가적인 실험이 필요한 것, 학습이 더 필요한 것 등등 간략하게 적어보세요. 작성해보면 자기 자신이 어디까지 와있는지 감이 잡힙니다. 어느 부분이 지금까지 해왔으며 충분하고, 어느 부분이 앞으로 집중해서 실험하고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지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작성된 민망한 학위 논문 초안은 시간 날 때마다 다시 보고 수정하고 더 채워 놓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전체 구성을 뒤집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박사 학위 논문의 전체적인 체계를 잡는 것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제 경우에는 부끄럽지만 10학기 즈음 이런 작업을 시작했었고, 이 작업을 통해 앞으로 몇 개월 내에 어떤 실험을 해서 어떤 논문을 작성하겠다는 목표가 분명해졌습니다.



교수님의 프로젝트를 본인이 끝까지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상한 예시가 될지 모르겠지만, 교수님의 프로젝트가 복합쇼핑몰이라 한다면, 본인은 그 쇼핑몰의 근사한 식당가를 설계하고 내가 집중한 식당가가 전체적인 쇼핑몰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 박사 학위로 집중하면 됩니다. 나머지 의류매장이니 놀이시설이니 하는 것들은 석사나 박사과정 초반의 후배들이 할 수 있게끔 가르쳐주고 핵심적인 것들만 도움을 주면 됩니다. 
교수님께서 프로젝트를 완성시킬 학생이 필요했었던 것이라면, 작성자 분께서 전체 프로젝트의 한 부분으로 최종 학위 심사를 할 무렵에 후배들은 프로젝트의 다른 부분을 담당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해 있을 겁니다.



교수님하고 어떻게 딜(deal)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세요.


학생이 감히 교수님하고 거래를 하는가 비난받을 수 있겠지만, 저는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지도교수님도 국회의원이나 정부부처 사무관 회의 등등 연구 외의 업무가 많아서 논문 manuscript를 정말 안 봐주시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제 후배의 경우 manuscript가 3년 이상 교수님 책상 위에 방치되어서, 그 사이 거의 유사한 방법으로 결과를 낸 다른 그룹에서 먼저 논문 발표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타 그룹보다 1~2년 전에 먼저 결과를 냈음에도 논문을 아예 장을 묵혔던 후배는 결국 manuscript에서 한 단락 정도만 수정해서 낮은 저널에 낼 수 밖에 없었었죠. 결국에 깨닫게 된 것은 교수님과 무언가 딜을 할 수 있는 것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뭐 거창한 것은 없습니다. 교수님께서 나를 찾아서 일을 시키지 않으면 조금이라도 아쉬운 게 뭐인지 생각해보세요. 
교수님이 자주 필요로 하고 내게 시키면 단기간에 끝날 일을 다른이에게 시키면 불안하고 오래 걸릴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세요. 
제 경우에는 제 박사 학위와 상관없는 모 프로젝트였습니다. 연구실의 다른 학생들은 제가 분석 프로그램은 만들어주지 않으면 분석하기 어려울 만큼 프로그래밍을 하지 못했었고, 장비 제작 경험이 없었습니다. 석사과정 후배들에게 계속 가르쳐주며 경험을 쌓게 했지만 결국 매년 과제 결과 보고서는 제가 작성해야 하는 프로젝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게 있으면 이야기하기 편해집니다.
우선 저는 졸업을 위해 a결과로 A저널에 투고할 수 있게 서식까지 다 맞춰서 논문을 작성해서 교수님께 드리고(어차피 바로 안보신다 하시더라도), b결과로 B저널에 투고할 수 있게 작성 중에 있다는 것과 c에 대해서 실험을 진행하고 있고 어느 정도 결과가 예측되고 있다는 것을 교수님께 주기적으로 말씀드렸습니다. 또 박사학위 논문 초안(앞에서 언급한..)을 출력해서 학위 논문은 이러한 흐름과 구조로 작성하고 있다고 교수님께 주기적으로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이러한 행위가 쌓이다보면, 교수님께서 제게 급하게 업무를 시킬 때마다 할 수 있는 말이 생깁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건은 언제까지 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전에 제가 드린 a논문은 보셨나요? 언제까지 투고가 되어야 차후 제 학위논문 심사에 지장이 없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b논문도 다음 주면 B저널 서식에 맞춰 다 작성하여 교수님께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c에 관련 한 실험 결과는 ~~" 이런 식으로 교수님께서 제게 다른 일을 시키실때마다 제 논문을 덧붙여 이야기 했습니다. 박사 학위를 위해서 이렇게 결과물을 계속 교수님께 드리고 있음에도 교수님은 피드백없이 내게 다른 일을 시키고 있음을 계속 어필하는 것입니다.
제 후배의 경우, 교수님의 과제 및 협회 활동에 대한 예산, 행정 업무를 손에 쥐고 있어서 교수님께서 그 일로 후배를 찾을 때마다 후배는 자신이 드린 논문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역으로 묻는 방법을 썼습니다.

다만 학생이 교수님이 아쉬워할만한 것을 쥐고 있다고 해서 그게 막강한 무기가 되지는 못합니다. 어느 조직이든 내가 없으면 안돌아갈 것 같아도, 어떻게든 돌아갑니다. 다만 일정시간 약간의 어려움이 발생할 뿐인 거죠.



자신의 아군을 많이 만들어두세요.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출연연 연구원이든 타 대학 교수님이든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 분들께 좋은 인상을 만들어두세요. 결국 그 분들이 교수님을 은연 중에 압박할 수 있게 해주는 아군이 되기도 합니다. 외부의 다른 분들께 잘 각인이 된다면, 그분들이 결국 "A학생은 박사학위 받을 때가 된 것 같은데 언제 졸업하나요?", "A씨가 아직 박사학위가 없다고요?" 하시는 식으로 지도교수님께 말을 던져주기도 합니다. 
제 후배의 경우 여기에 더해서, 타 기관 박사님들이 같이 연구하자며(구출해주자며) 후배를 본인들 기관이 자주 불러내서 지도해주고 논문 기회를 주기도 했습니다. 지도교수님이 불쾌하시지 않게 줄타기를 잘 해야 하지만, 제 후배는 타 기관 박사님들이랑 논문을 작성하며 막강한 지원자를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공동으로 작업했던 박사님들이 지도교수님께 논문을 보내며 "다음 주 언제까지 피드백에 없으면, 그대로 저널에 투고합니다"식으로 교수님을 제대로 압박해주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지도교수님도 결국 학생의 논문에 저자로 들어가 있으니, 기간 내에 한번은 볼 수 있게 다른 공동연구자분들이 압박해주는 모양이 되는 거죠. 결국 그 후배는 타 기관 박사님들이 제대로 이끌어주셔서 박사학위를 받았었습니다.



교수님하고 자주 이야기하세요.


교수님께서 학생들 논문을 봐주시지 못하는 것도 결국에는 교수님께서 일이 많으신겁니다. 마치 중소기업 사장님 마냥 연구비를 받아와야 하고 그 연구비로 학생들 장학금을 주시는거죠. 교수님의 과중한 업무에서 학생이 도울 수 있는 부분과 학생 본분에서 연구 및 학위 졸업 등 자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겁니다. 이야기를 자주 해야 학생의 진로 고민을 교수님이 알게 되시고 자연스레 박사 학위를 어느선에서 마무리를 짓게 하자는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두서없이 제 경험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오랜 학위 과정에 지쳐있고, 자신감도 떨어질 법도 한데, 너무 좌절하지 마시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가시면 됩니다.
저도 석사와 박사 총 17학기 하면서 많이 늦었다고 좌절했었지만, 결국 그 오랜기간 박사학위 주제와 관련 없는 프로젝트까지 이것저것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그 덕에 몇개월 짧은 포닥 중 모 기관의 정규직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학교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꼭 그게 100 %는 아닙니다. 지금부터라도 노력하셔서 성과로 다른 경쟁자들을 이기면 됩니다. 지금까지 연구 성과가 미미하더라고 그동안의 경험을 발판으로 남은 박사 학위 기간 동안 논문을 많이 만들어내시고, 나중에 기관 등에 지원 시 최근 N년간 성과에 유효한 것을 많게 하면 된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모쪼록 박사학위까지 잘 마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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